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니발 바르카 (문단 편집) ==== 반론 ==== 우선 한니발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. 해상을 통한 직접 이탈리아 상륙은 로마의 해군력 때문에 불가능했다. 그렇다고 전장을 이베리아 반도에 한정 짓거나 그곳에서부터 서서히 진출해나가는 건 보급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, 카르타고를 월등히 압도하는 로마의 동원력[* ‘‘[[폴리비우스]]는 BC 225년 현재 로마에 복무 중이던 70만 명 이상의 보병과 7만 명 이상의 기병을 언급하면서 "한니발이 장차 공격해야 하는 병력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."라고 말했다. 한니발 역시 로마의 병력이 카르타고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인정했다. 하지만 그는 공격을 강행했다.’’ - 마크 힐리,《칸나이 BC 216(플래닛 미디어, 2007)》, 23쪽.][* 한니발이 이탈리아 침공을 결심한 배후에 깔려 있던 훨씬 더 강력한 이유는 그가 잠재적으로 카르타고의 '''여섯 배나 일곱 배'''가 되는 로마의 군사력의 뿌리를 절단하고 싶어한 데 있었다. 로마의 동맹시 체제를 와해시켜야만 그 막대한 군사력을 무력화시키고 파쇄해볼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. - 프리츠 M. 하이켈하임,《하이켈하임 로마사(현대지성, 2017)》, 313 ~ 314쪽.]을 고갈시키는 게 불가능하다. 이 경우 전쟁은 소모전으로 흘러가게 되고, [[남북전쟁|이변이 없는 한 자원이 많은 로마 쪽이 승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]]. 그렇다고 '''전쟁을 안 한다'''는 선택지 또한 고를 수 없었다. 한니발 개인의 원한을 떠나서, 카르타고보다 몇 배나 국력이 강한 로마는 지속적인 팽창 정책을 펼치고 있었고[* 애초에 [[포에니 전쟁|제1차 포에니 전쟁]] 부터가 시칠리아 섬에 대한 로마의 침공으로 시작되었다. 물론 로마 입장에서도 안보 문제가 걸려 있긴 했다.], 이를 방치하면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힘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. 따라서 한니발 입장에서는 이탈리아 본토를 공격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며 동시에 기울어진 국력차를 극복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.[* 한니발이 인력과 물자를 충당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은 히스파니아였고 그에게는 잘 훈련되고 믿을 만한 부대가 그가 직접 지휘하는 부대 단 하나 밖에 없었기에, 그가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전선을 하나로 축약하는 데 있었고 그 전선이 로마의 본토인 이탈리아에 형성되면 더욱 좋았다. 로마의 본토가 침략당하는 위기에 처해 있는 한 로마인들은 대군을 이탈리아에 결집시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. 그렇기 때문에 그로서는 반드시 이탈리아를 침공해야만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. - 프리츠 M. 하이켈하임, 2017, 313 ~ 314쪽.][* 대군을 이탈리아에 결집시킨단 말은, 그만큼 로마가 주변 지역에 병력을 파견하기 힘들어진다는 걸 뜻한다. 그러나 카르타고는 한니발이 만들어 준 이러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한다.] 한니발은 북이탈리아의 갈리아인들이 이미 로마와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그들이 자신과 합류할 것을 기대했으며[* 프리츠 M. 하이켈하임, 2017, 314쪽.]이탈리아의 정치 상황을 분석해서 굳이 로마 연합에 묶여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상당수의 동맹국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. 그리고 로마가 [[칸나이 전투|칸나이에서 엄청난 패배를 당하자]], 실제로 남부 이탈리아의 동맹시들 상당수는 로마를 배신하고 한니발 편에 붙었다.[* 마크 힐리, 2007, 24쪽.] 그리고 위 목차의 '''본토 기습 전략'''을 지적한 부분은 [[허수아비 공격의 오류|한니발의 목적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저질렀다]]. 한니발의 목적은 이탈리아 본토를 공격함으로써, 로마와 동맹시 사이의 정치적 관계를 깨뜨려 로마의 동원체제를 붕괴시키려는 것이었다. 로마가 엄청난 군사적 우위를 갖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정치적 장치 덕분이기 때문이다.[* 마크 힐리, 2007, 23쪽.] 한니발이 피해야 할 상황은 예를 들자면 알프스 하산 직후에 지친 상태에서 로마군에게 기습당하는 것이지, 로마에 알프스 입산 자체를 들키지 않을 필요까진 없었다. 무엇보다 한니발은 이탈리아 본토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. [[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(기원전 218년 집정관)|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]]는 한니발을 저지하기 위해 마실리아에 상륙했다가, 자신이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걸 알고 한니발이 알프스 산맥을 넘어올 걸 대비하여 갈리아 키살피나에서 두 개 군단 병력을 지휘하기 위해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되돌아갔다. 그러나 한니발이 북 이탈리아의 평지에 도착해 약간의 휴식을 취하는 걸 막지 못했고, BC 218년 [[티키누스 전투|티키누스 강]]에서 끝내 패해 포 강 이남으로 후퇴하게 된다.[* 프리츠 M. 하이켈하임, 2017, 314 ~ 316쪽] 중요한건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는다는 소식에 대한 은폐 여부가 아니라 한니발이 알프스 산맥을 넘는 속도였고 실제로 한니발은 알프스를 단 16일 만에 돌파하면서 목표를 달성하는데 성공한다. 뿐만 아니라 한니발 자신이 알프스를 최초로 넘었노라 선전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, 그가 최초로 넘은게 아니라는 것이 한니발의 전략적 안목에 대한 비판이 될 순 없다. [[켈트족]]과는 비교하면 안 되는 것도 한니발 군대와의 규모 차이를 생각한다면 켈트족이 오르는 것과 한니발이 오르는 건 엄청난 차이이기 때문이다. 이는 한니발에게 과도한 찬사를 하는 자들의 문제일 뿐이다. 한니발에 대해 비판을 하려면, 우선 "그가 카르타고의 역량을 어디까지 가늠할 수 있었나?"를 먼저 따져야 할 것이다.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대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이에 대해 논하기는 쉽지 않다.[* 역사가 [[폴리비우스]]는 [[로마군]]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었지만, 안타깝게도 카르타고군의 조직에 관한 자료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. - 마크 힐리, 2007, 45쪽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